사진을 사랑하는 크리에이터들이 말하는 카메라와 그 스토리. ‘애기’라는 존재에는 각자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비춰집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Minolta dynax 7000i〉를 애용하는 JIYEJI 님이 등장합니다.
최근 필름 카메라는 단순한 “그리운 도구”를 넘어, 시간과 기억을 기록하는 매체로서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디지털로는 잘라낼 수 없는 공기와 여백, 그리고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온도감. JIYEJI 님에게 〈Minolta dynax 7000i〉는 말 그대로 인생과 시간을 함께 걸어온 존재였습니다.
〈Minolta dynax 7000i〉기본 정보
〈Minolta dynax 7000i〉는 1988년에 미놀타에서 발매된 35mm 필름 SLR 카메라입니다. 전자 제어를 통한 쾌적한 조작성과 미놀타 특유의 부드러운 색 재현이 특징이며, 지금도 올드 AF 필름 카메라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창고에서 발견한 운명
이 카메라가 제 손에 들어온 지는 벌써 8년이 되었습니다. 카메라를 얻게 된 경위를 간략히 풀어보자면,처음 DSLR 카메라를 다뤄본 여행사에서 좌절을 맛본 뒤, 지방에 있는 본가로 내려갔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카메라를 잘 다루지 못해 “사진은 내 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라고 느꼈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갈 때마다 창고를 뒤져보는 건 제 소소한 취미였습니다. 무언가 달라진 건 없을까 둘러보는, 그저 평소와 다름없는 루틴이었죠.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Photo by JIYEJI
그런데 그날엔 커다란 카메라 가방이 제게 툭 떨어졌습니다.
하필 ‘사진은 내 길이 아닌가보다’ 생각하던 찰나에 나타나 “날 데려가”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정말 영화의 한 장면 같아서, 이상하게도 “이건 운명일지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Minolta dynax 7000i 카메라는 긴 시간을 넘어 제게 전해졌습니다.
Photo by JIYEJI
아버지에게서 이어받은 꿈
이 카메라는 예전에 아버지가 사용하던 것이었습니다.
20년 가까이 창고에 방치되어 있었는데도, 배터리 누액이 생긴 플래시를 제외하면 놀라울 정도로 깨끗한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바디와 렌즈 모두 큰 문제 없이 작동했고, 아직도 촬영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문득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사진에 대한 꿈을 제가 이어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Photo by JIYEJI
그렇게 조금씩 장비를 제 손에 익히기 시작했고, 여러 테스트를 거쳐 지금의 조합을 만들어냈습니다. 가장 먼저, 한국에서 ‘김밥 렌즈’라고도 불리는 〈Minolta AF 70-210mm F4〉 망원렌즈를 접하게 되었어요. 특유의 길쭉한 원통형 디자인이 김밥을 떠오르게 하는 렌즈입니다.
Photo by JIYEJI
필름카메라임에도 먼 곳까지 포커싱할 수 있다는 건 아주 큰 장점으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기분 좋은 발색과 부드러운 배경 흐림은 이 렌즈의 매력입니다.저는 무언가를 단순하고 명료하게 표현하는 사진을 좋아하는데, 그런 점에서 이 렌즈는 더할 나위 없이 잘 맞는 선택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Minolta AF 50mm f/1.4〉 단렌즈를 함께 사용하며 표현의 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부서지면서도, 함께 살아가기
이 카메라의 바디는 워낙 약하기로 유명합니다. 실제로 사용해보면 그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죠.
지금도 가끔 손을 대면 그대로 겉 커버가 바스라집니다. 만질 때마다 조금씩 닳아 없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카메라가 오랜 시간을 살아온 증거라고도 생각합니다.
물론 더 고성능의 필름카메라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카메라와 함께 성장해 왔어요. 그래서 이제는 “이 카메라가 아니라면, 아예 디지털 카메라를 다루지 않을까?”라고까지 생각합니다.
Photo by JIYEJI
언제 고장 나도 이상하지 않은 카메라인 만큼, 해외 경매 사이트에서 같은 모델의 바디와 렌즈를 추가로 구매해 보관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추가로 구매한 카메라 역시 독일의 한 아버지가 사용하던 물건이었다는 점입니다. 우연히도 누군가의 시간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어져 가는 이야기의 겹침 속에서, 묘한 인연을 느꼈습니다.
시간을 기록한다는 것
저는 최근 ‘시간’을 탐구하는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카메라가 조금 더 특별하고, 오랜 시간 저와 함께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오래된 기계이니 언젠가 고장 나버릴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 카메라와 함께 걸어온 시간 자체가, 이미 제게는 소중한 작품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Photo by JIYEJI
처음 카메라 가방이 저에게 떨어졌을 때, 어쩌면 운명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영화 속 클리셰 같은 순간이 내게 펼쳐졌구나, 아주 오래 이 친구와 함께 여행하게 될 거란 것을 어렴풋이 느꼈을지도요.
여러분에게도 ‘어느날 굴러온 장비’가 있나요?
JIYEJI
cizucu Manager in Korea / Photographer, Editor, Creator
cizucu:JIYEJI
Instagram:@jiyeji_20








